82년생 김지영, 무엇이 문제인가?

불공정한 문제제기와 그 적절한 수용에 대하여

요약

『82년생 김지영』에는 3가지의 문제점이 존재한다. 첫째, 통계를 과장하는 모습이 보인다. 둘째, 여성, 또 남성 롤모델을 제시하지 못한다. 셋째, 남성에 대한 폭력과 고정관념에 무감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반드시 저자의 악의에서 온 것만은 아닐 수 있다. 작가는 여자이며, 따라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인지 편향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인의 이기적인 속임수란 언제나 일어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주장이 진실일 수도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할 경우, 사회 또한 비교적 건전하고 만족스러운 합의에 이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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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

『82년생 김지영』은 한 여자의 일생을 그린 소설이다. 작가는 김지영의 인생을 유년, 청소년, 대학생 시절, 결혼, 임신, 출산과 퇴사의 과정을 차례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자 의사의 “생각”을 묘사한 뒤 소설을 끝낸다. 유년기에서는 과거의 남아선호사상을 묘사한다. 청소년기에서는 초경과 위협적인 남성을 그리고, “피해자 질책”의 문제를 지적한다. 대학생 시절에서는, 성적인 낙인과 여성 취업의 문제를 묘사하고 있다. 결혼 과정에 대한 묘사에서는, 상견례, 결혼식 비용의 문제, 연봉 차이, 출산 압력의 문제를 다룬다. 출산에서는 죄책감으로 인한 퇴사와 “독박 가사”, 몰카의 문제를 묘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남성 의사의 위선을 묘사하고 소설을 끝낸다.

이 『82년생 김지영』은 “페미니즘 열풍”을 대표하는 소설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책에는 묵과할 수 없는 문제점들이 존재한다. 더불어, 이러한 문제들은 작가의 잘못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보다는 인간의 “제한적 합리성”과 “타자화” 때문에 일어나는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 이 글에서는 3가지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첫째, 82년생 김지영에서는 어떤 문제가 나타나는가? 둘째, 왜 그런 문제가 나타나는가? 셋째, 우리가 이 소설을 볼 때 가져야 할 바람직한 태도는 무엇인가?

이 책의 문제점

소설의 문제는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통계를 과장하는 모습이 보인다. 둘째, 여성, 또 남성 롤모델을 제시하지 못한다. 셋째, 남성에 대한 폭력과 고정관념에 무감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통계의 오남용

먼저, 이 소설이 통계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살펴보자. 소설 속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또 2006년에 10.22퍼센트였던 여성 관리자의 비율은 꾸준히 그러나 근소하게 증가해 2014년에 18.37퍼센트가 되었다. 아직 열 명 중 두 명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작가는 통계의 대상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 마치 모든 기업을 전수조사 했는데, 여성 관리자가 20%에도 미달하는 듯 묘사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해당 자료는 공공기관과 민간 500인 이상 사업장을 조사한 자료일 뿐이다. 민간 종사자의 92.7%는 500인 이상 사업체에 근무하지 않으므로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결국, 공공기관과 대기업의 여성 관리자가 20%에 미달한다는 게 정확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다음 구절을 살펴보자.
직장을 그만둔 여성의 절반 이상이 5년 넘도록 새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실정이다. 어렵게 재취업하더라도 직종과 고용 형태 면에서 모두 하향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퇴직 이전의 직장과 비교해 보면 (중략) 제조업과 사무직이 줄어드는 반면 숙박, 음식점업과 판매직은 늘어난다. 임금 여건 역시 좋을 리 없다.

역시 이 또한 통계의 왜곡이라고 볼 수 있다. 새 일자리를 찾지 “않는” 것일까, “못하는” 것일까? “경력 단절 여성”은 비경제활동인구, 다시 말해 아예 구직을 시도하지 않는 인구를 포함한 개념이다. 해당 통계는 여성 전체의 고용률 향상이라는 것을 목표로 잠재적인 노동 인력을 확인하고자 작성된 자료이지, 취업을 원하지만 취업하지 못하고 있는 여성들을 조사하기 위한 자료가 아니다. 이에 근접한 자료는 여성 실업률일 것인데, 이 “여성 전체 실업률”은 2000년부터 2017년 현재까지의 데이터를 살펴 보았을 때, 남성보다 낮은 모습을 지속적으로 나타낸다. 이를 바탕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정확한 자료를 얻기 위해서는 “취업 희망 여부”를 감안한 경력 단절 여성의 집계가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지금 대한민국에 그 정도 경제력을 갖춘 30대는 극히 일부다. 최저임금을 받으며 식당과 카페에서 음식을 나르고, 남의 손톱을 정리하고, 마트와 백화점에서 물건을 파는 엄마들이 더 많다.
이 부분도 유사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역시 같은 출처의 자료인데, 작가는 대부분의 30대 여성이 최저임금을 받으며 노동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작가가 앞서 언급한 통계 자료에서는, 재취업 여성의 경우 그렇지 않은 여성과 비교해 임금의 73.2% 수준을 받는다고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작가는 30대의 취업 상황과 그 노임에 대한 별도의 자료를 제시하거나, 해당 구절을 수정했어야 할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작가는 계속해서 통계를 인용하면서도, 자신이 주장하는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근거가 되는 자료를 제시하지 않는다. 다음의 구절을 보자.
김지영 씨가 태어났던 1982년에는 여아 100명 당 106.8명의 남아가 태어났는데, 남아의 비율이 점점 높아져 1990년에는 116.5명이 되었다. (중략) 남학생이 입학할 수 있는 학교는 부족했다. (중략) 김지영 씨가 입학하던 해에 학교는 남녀공학으로 전환되었고, 김지영 씨의 학교를 시작으로 몇 년 사이 다른 여중과 남중도 모두 남녀공학이 되었다.

그러나 한 논문은 남녀 공학으로 학교들이 전환된 주요한 이유가 중학교 무시험 진학, 그리고 평준화 정책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를 비추어 보았을 때, 작가의 주장이 정확한 사실에 기초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다음 구절도 마찬가지이다.
윤혜진 씨는 좀 비관적이었다. 김지영 씨보다 학점도 높고, 토익 점수도 높고, 컴퓨터 활용 능력이며 워드프로세서 같은 취업 필수 자격증들도 있고, 솔직히 기업에서 더 선호하는 전공인데도 대기업은커녕 월급은 제때 나올까 의심스러운 곳에도 취직하기 어려울 거라고 했다. (중략) “그 선배들 거의 남자잖아. 너 여자 선배 몇 명이나 본 것 같아?” (중략)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랬다. (중략) 김지영 씨가 졸업하던 2005년, 한 취업 정보 사이트에서 100여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여성 채용 비율은 29.6퍼센트였다. 겨우 그 수치를 두고도 여풍이 거세다고들 했다.

이 주장은 사실일까? 그렇게 보기 어렵다. 만약 그렇다면, 최근 초혼 연령이 증가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20대 여성의 실업률이 20대 남성의 실업률보다 높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남성의 실업률이 더 높게 집계된다. 뿐만 아니라 작가가 인용한 해당 자료에서도, 두 회사의 신입사원이 60%나 여성이며, 취업자 통계 증가분의 68%가 여성인 점, 조사 100개 기업의 여성 채용 비율이 29.6%였던 점을 함께 고려하여 여풍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모두 고려했을 때, 취업에서의 여성 성차별은 작가의 생각과는 다른 양상일 가능성이 존재한다. 작가는 자신의 추론을 뒷받침하는 논문을 찾아 제시했어야 한다.

결국 이 책에서의 통계는 일종의 스토리텔링적 장치로 보인다. 실제 판단의 근거가 되기보다는 책을 더욱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장식하고, 또 검증되지 않은 자신의 주장을 검증된 양 제시할 수 있게 해 주는 장치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책의 내용이 “실제로 사실이 아닐 수 있다” 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접근이고, 또 비윤리적이므로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미래상의 결여

둘째, 이 책은 여성과 남성의 삶이 어떻게 변화될 수 있을지에 대해 설득력 있는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다. 김자영 씨는 결국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정신병에 굴복했고, 스스로의 힘으로 가부장적 가정을 해체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결국 전통적 성 역할을 받아들이고 말았기 때문이다.

책에 나타나는 다른 인물들도 여성의 모범이 되지는 못한다. 김지영의 어머니는 결국 경제적 권력을 쟁취한 인물이고, 가부장제를 나름 극복해낸 여성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다른 여성에게 남성과의 경쟁에서 항상 승리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나머지 여성들은 김지영씨의 삶에서 단편적으로 등장해 도움을 주고 사라질 뿐이다. 게다가, 그렇게 등장하는 여성들조차도 항상 승리를 거두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학점도 높고, 토익 점수도 높“은 윤혜진 씨는 학과장과의 대결에서 승리하지 못했고, 다만 사법 시험 지원을 통해 더 이상의 대결을 피했을 뿐이다.

더불어 남녀 갈등에서의 핵심은 부부 관계의 형성, 그리고 가정 내 역할과 책임 분배의 문제이다. 그러나 김지영씨는 단순히 자신의 역할을 수용했을 뿐이다. 또, 소설 내에서 이상적인 가족은 등장하지 않는다. 결국 이 소설은 여성의 개인적 노력은 실패할 뿐이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 소설에는 바람직한 남성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김지영의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무능한 사람이고, 김지영의 남편은 아내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인물이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정신과 의사는 아내를 생각하는 척 하지만 동일한 처지의 다른 여성에게는 공감하지 못하는 위선적인 인물이다. 김지영의 남자친구들은 김지영과 평등하고, 견고한 관계를 구축하는 일에 실패한다. 가사 분담에 대해, 연애 과정에 대해, 직장과 육아의 책임에 대해, 이 책의 남성들은 모범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에서 좋은 남성상을 찾기란 어렵다. 그 결과, 이 책에는 긍정적인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남성에 대한 경멸

셋째, 이 작가는 남성에 대한 폭력과 남성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해 무감각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다음의 구절을 보자. “은영 아빠가 나 고생시키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 둘이 고생하는 거야.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니까 혼자 이 집안 떠메고 있는 것처럼 앓는 소리 좀 하지 마. 그러라고 한 사람도 없고, 솔직히, 그러고 있지도 않잖아.”
아버지가 한껏 어깨를 뒤로 젖히고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자 어머니가 팔짱을 끼며 비웃었다.
어머니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숟가락으로 식탁을 내리쳤다. (중략) 아버지는 당황했는지 갑자기 딸꾹질을 했다. (중략) 어머니의 불 같은 분노 덕분에 아버지는 막말을 멈추고 딸국질을 되찾았다.
남자들은 안 그래요. 아무리 막내고 신입 사원이라도 시키지 않는 한 할 생각도 안 해.
선배들은 같은 시기에 같은 전형으로 뽑았는데 남자 둘은 왜 저렇게 처지느냐고 공공연하게 농담을 하곤 했다.
사실 출산과 육아의 주체가 아닌 남자들은 나 같은 특별한 경험이나 계기가 없는 한 모르는 게 당연하다.

비웃음과 상대방에 대한 경멸은 분명한 언어 폭력이다. 더불어 직접 때리지 않더라도,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 것 또한 폭력적인 행동이다. 폭력 행위에 놀란 피해자를 “딸꾹질을 되찾았다”라며 희화화하려는 시도 또한 매우 부적절하다. 또, 남성은 시키지 않는 일이면 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을 다시 전파하고 있으며, 남자는 어리석다는 오래된 생각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는 아예 남성의 입을 빌려, 남자는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김지영 또한 수많은 남성들의 언어폭력에 노출되어 있는데, 여성의 언어폭력만을 부적절하다고 비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여성에 대한 언어폭력에는 김지영이 직접 반응하고 대처하는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을 간과한 주장이다. 여성에 대한 언어폭력에는 김지영의 고통이 함께 제시되지만, 남성에 대한 폭력에는 그 어떤 결과도 제시되지 않는다. 그 결과, 남성에 대한 폭력은 자연스럽고 평범한 일상의 일부로서 제시된다. 따라서, 이 소설이 남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폭력을 재생산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82년생 김지영을 건전하게 다루기

앞서 이 책의 3가지 문제점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의 저자가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속이려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태도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제한적인 합리성을 가진 존재이다. 인간은 자기에게 만족스러울 정도로만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한다. 인간에게는 인지 편향도 존재한다. 구체적으로, 인간이 자신의 주장을 확증해주는 자료에 집중하는 현상, 자기와 다른 집단의 실수는 그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같은 집단의 실수는 외적 상황의 문제로 돌리는 현상이 알려져 있다. 이를 고려해 보았을 때, 이 책이 여성 친화적이고 남성에 대한 폭력에 무감각한 그런 특징을 가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작가는 여자이며, 따라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이데올로기 투쟁의 관점에서 이 책을 살펴볼 수도 있다. 남성에게 권력을 실어주는 “지배“ 이데올로기가 있고, 이에 반하는 “저항” 이데올로기가 있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여성은 남성 권력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사상을 필요로 할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욕구를 바탕으로 나타났을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이 책의 남성 고정관념은 필연적인 요소였을 것이다.

앞선 분석이 타당하다면, 82년생 김지영의 “3가지 문제”는 수정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이다. 그렇다면 이런 책은 어떻게 대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그 답은 역시 “제한적 합리성”이라는 개념에 놓여 있다. 인간은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자료를 조사하고 분석한다. 따라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명확하게 인식한다면, “불공정한 문제제기”의 함정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불공정의 자연스러움”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우리의 생각이 공정하지 않다는 인식까지 가질 필요가 있다. 이런 인식을 가지지 못한다면, 상대방의 타당한 지적도 놓치게 될 것이다. 타인의 이기적인 속임수란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라는 관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주장이 속임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런 태도를 가짐으로써, 두 대립하는 개인의 생각은 점차 수렴될 수 있을 것이다. 그 결과로 사회 또한 비교적 건전하고 만족스러운 합의에 이르게 될 것이다.

참고자료

-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민음사, 2016, 98쪽
- 자료가 수집된 사업장은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적용 사업장”으로, 모든 공공기관과 500인 이상 민간 기업을 의미한다. 고용노동부, 『2015년판 고용노동백서』, 2015, 83쪽 참조.
- “시도별, 산업별, 규모별, 사업체수 및 종사자수(성별)”, 고용노동부, 2018. 03. 23, http://laborstat.molab.go.kr:8081/OLAP/Analysis/stat_OLAP.jsp?org_id=118&tbl_id=DT_118N_SAUP72
- 박진희 외, 『2015 KEIS 노동시장 분석』, 한국고용정보원, 2015, 68~69쪽
- “성/연령별 실업률”, , 2018. 03. 23, http://kosis.kr/statHtml/statHtml.do?orgId=101&tblId=DT_1DA7102#
- 정해숙 외, 『남녀공학 중등학교에서의 성별 교육실태와 향후과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09, 3쪽
- “[알록달록 얼룩덜룩 2005] 키워드로 본 2005 취업 시장”, 동아일보, 2015. 12. 14, http://news.donga.com/Economy/more29/3/all/20051214/8256641/1, (2018. 0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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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업데이트: 2019. 1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