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
- 메타인지 자체가 의식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뉴런 간 전기신호의 흐름과 발화 양상 자체를 모니터링하는 구조가 뇌에 존재하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이 의식을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의식을 관장하는 구조가 발견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한 구조는 신경망 전체에 퍼져 있을 것이므로.
- 인간의 뇌는 논리적인 문제를 풀 수 있다. 만약 그 과정을 해명할 수 있다면, 신경망 시스템에 규칙 / 지식 기반 학습을 끼워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소규모 케이스만으로도 딥러닝의 학습 결과를 수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고통이란 무엇일까? 고통은 의식에 분명한 신호를 보내지만, 의식적으로 무시하는 게 불가능하다. 이는 의식과 의지가 서로 다른 개념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무의식이 아닌, 의식에도 자동적인 차원이 있다.
- 인간 정신은 의외로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감각적 자극과 그 심상, 그 자극을 계산한 결과인 피쳐(feature), 그 피쳐를 계산한 결과인 피쳐 맵(feature map), 그리고 운동 기관으로의 출력 체계.
- 지루함은 사고 과정에 있어서 매우 필수적인 감정이 아닐까? 형식 논리학을 살펴 보면, 진리나무법으로는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문제들이 존재한다. 거짓임을 보여주는 계산 과정에서 무한히 반복되는 패턴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한한 패턴에 대처하여 사고를 끊어내는 장치가 지루함 아닐까?
- 인간의 뇌는 의외로 용량이 작은 것이 아닐까? 숙고하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사고의 흐름은 굉장히 선형적이다. 한 문장 한 문장 단위로 생각하게 되는데, 이것은 사실 의식 자체의 한계인 것이 아닐까? 시야의 경우도 그렇다. 사람 눈의 초점 - 초점에 시신경이 모여 있고, 이 시신경이 뇌 전반에 연결되어 있다. 어쩌면 물리적 자극을 처리하고 운동 기관의 출력을 처리하는 과정 자체에 대부분의 뇌세포가 소모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케인스주의자들과 통화주의자들이 있었다. 둘 다 한때는 잘 먹혔다. 그러나 지금은 둘 다 섞어 써도, 그 중 하나만 선택해 사용해도, 시장이 잘 반응하지 않는다. 공산주의도 그렇다. 북한은 한 때 남한보다 잘 살았던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본주의 남한이 우세해졌다. 이러한 과거의 사례를 보았을 때, 시대와 상황에 따라 사회이론의 설명력 자체가 변동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스럽다. 자연과학과는 달리, 사회 이론에는 "유통기한"이 있는 것이 아닐까? 설명 대상인 사람들의 본질 또는 행동 원리 자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아닐까? 설령 설명력 100%의 이론을 찾아낸다 하더라도, 10년만 지나면 설명력이 뚝뚝 떨어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
- 사람은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의 모국어로 구성된 문장을 통해서 숙고하고 사고하게 된다. 어쩌면 사고 과정은, 문장으로 청각적 심상을 구성하고, 그 청각적 심상을 다시 신경망에 입력하여 관련된 뉴런들을 발화시키고, 그 결과 중 감정가나 가중치가 걸려 있는 개념들로 다시 청각적 심상을 구성하는 과정인 게 아닐까? 그리고, 사고할 수 있는 문장의 양이 하나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인간의 능력은 사실 굉장히 제한적인 것이 아닐까?
- 사람은 단어, 개념, 자극을 어떻게 연관지어 생각하는 것일까? 단순히 상관학습을 할 뿐인 게 아닐까? 그렇다면 이러한 학습 방법을 AI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자극을 AI에게 제공해야 하는 걸까? AI는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사람은 감정을 어떻게 학습하는가? AI는 고통을 느낄 수 있을까? 고통에 몸부림치는 AI를, 또는 로봇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 의지, 정신력이란 무엇일까? 누군가는 뇌 내에 잔존해 있는 에너지량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자유의지란 무엇일까? 인간의 자유의지란 무엇인가? 의지를 가진 AI, 로봇이 가능할까? 자연스러운 결정, 본능적인 결정이란 무엇인가? 이에 반하는 것이 의지인가? AI에게 의지를 넣기 위해서는 AI에게 본능 또한 부여해야 하는가?
- 예쁜 꼬마 선충의 뉴런은 완전히 해석되었다고 한다. 이 뉴런의 연결망을 AI의 베이스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 외부의 관찰을 통해 예쁜 꼬마 선충의 "본능"과 "의지"를 구분하는 일이 가능할까? 의지란 어쩌면 단기적 최선과 장기적 최선이 서로 다를 때, 장기적 최선을 선택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의지력을 행사한다는 행위는, 단기적 최선을 보고 발화되는 뉴런에 대해 억제 뉴런을 발화시킨다는 의미가 아닐까? 발화의 전파를 막는데도 발화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것이 혈당과 에너지의 소모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 만약 그렇다면 사고에 따라 억지 뉴런이나 일반 뉴런이 발화하거나 발화하지 않는 것이 가능하단 이야기 아닐까? 본능이라 함은 기본적으로 발화되는 뉴런을 말하는 것일 터이고, 의지라고 함은 사고에 의해 활성 가능한 뉴런들을 활성화시키는 행위를 의미할 것이다.
- 인공지능을 제어하는 인공지능 - 메타 인공지능은 가능한가?
- 책을 손상시키지 않는, 값싼 도서 스캐너 시스템은 무척 유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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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업데이트: 2020. 01. 15